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1369년, 고려 공민왕의 동녕부 정벌과 개혁의 시대

by jolichi 2025. 7. 29.

고려 공민왕 시기 사진

 

수많은 시련을 이겨낸 대한민국의 역사적 사실 관계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을 되짚어봅니다.

 

고려 시대의 격동과 공민왕의 개혁

1369년은 고려 말기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자주적인 국가를 건설하려던 공민왕의 강력한 의지가 돋보인 해였습니다. 고려는 몽골의 원 간섭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던 시기로, 대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특히 주변국과의 갈등과 핍박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원나라가 점차 쇠퇴하고 명나라가 부상하는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 공민왕은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공민왕은 원나라의 간섭을 상징하는 정동행성(征東行省)을 혁파하고, 친원 세력을 숙청하는 등 반원(反元) 정책을 강력하게 펼쳤습니다. 그 일환으로 1369년에는 이성계와 지용수를 보내어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동녕부(東寧府)를 정벌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영토를 회복하는 것을 넘어, 고려의 자주성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동녕부 정벌은 고려가 더 이상 원의 속국이 아님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행위였으며, 쇠락해가는 고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미래를 위한 나침반이다."

 

 

개혁의 역경과 숨겨진 이야기

공민왕의 개혁은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권문세족의 강한 반발과 내부적인 갈등은 공민왕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특히, 권문세족의 불법적인 토지 겸병과 노비 문제는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는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민왕은 신돈(辛旽)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田民辨整都監)을 설치하고, 불법적으로 점유된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은 기득권층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고, 결국 신돈은 실각하게 됩니다. 공민왕 또한 개혁 추진 과정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으며, 사랑하는 부인 노국대장공주의 죽음 이후 깊은 실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고려 말기는 내부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홍건적과 왜구의 끊임없는 침입으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국력은 소모되는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고 국가를 재건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었습니다.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민족의 정신은 결코 꺾이지 않는다."


현재 발전의 역사적 배경

고려 말기의 혼란은 결국 조선의 건국으로 이어졌지만, 공민왕의 개혁 시도는 훗날 조선을 세우는 신진사대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그의 자주적인 대외 정책과 불법적인 토지 제도를 개혁하려는 노력은 조선의 토지 제도 개혁과 민생 안정 정책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현재 대한민국이 겪는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발전해나가는 데 중요한 정신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상황에서 불과 수십 년 만에 경제 성장을 이룬 '한강의 기적'은 단순한 경제 성과를 넘어, 과거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시련을 이겨내 온 우리 민족의 '백절불굴(百折不屈)' 정신이 현대적으로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고구려의 대(對)당나라 항쟁이 단순한 영토 전쟁이 아닌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듯이, 우리 역사의 모든 순간은 결국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치열한 노력의 연속이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패배의 기록이 아니라, 끊임없는 도전과 극복의 연대기이다."


당시 일어난 역사적 사건 (시간순 도표)

년도 주요 사건 내용
1352년 (공민왕 1) 김용의 흥왕사 변란 권문세족과 결탁한 김용이 공민왕을 시해하려 한 사건. 최영 등이 진압.
1356년 (공민왕 5) 쌍성총관부 탈환 및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공민왕의 반원 개혁 시작.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
1359년 (공민왕 8) 홍건적 1차 침입 원나라에 쫓겨난 홍건적이 고려를 침공, 서경 함락.
1361년 (공민왕 10) 홍건적 2차 침입 홍건적 재침입, 개경 함락. 공민왕 안동으로 피난.
1362년 (공민왕 11) 개경 수복 최영, 이성계 등의 활약으로 개경을 수복하고 홍건적을 격퇴.
1364년 (공민왕 13) 덕흥군 침공 (최유의 난) 원나라가 기황후의 오빠 기철 살해에 대한 보복으로 덕흥군을 내세워 고려 침공.
1365년 (공민왕 14) 신돈 등용 및 전민변정도감 설치 공민왕의 개혁 의지를 보여주는 인물 신돈 등용, 토지 및 노비 문제 해결 시도.
1369년 (공민왕 18) 동녕부 정벌 이성계, 지용수 등을 보내어 원의 지배 아래 있던 동녕부를 정벌, 고려의 자주성 강화.
1371년 (공민왕 20) 신돈 숙청 개혁에 대한 반발 및 정치적 갈등으로 신돈이 숙청됨.